그룹명/나의 근작시

투명가방

검지 정숙자 2015. 9. 28. 00:57

 

 월간문학2015-10월호 <기획특집 _ 미당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서정주를 노래하다>

 

 

     투명가방 

 

      정숙자

 

 

   누구나 태어날 때는 가방 하나씩 들고 옵니다

   좀 더 무거운 가방 맡겨진 이가 있고요

   조금 덜 무거운 손가방 주어진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디에도 가벼운 가방이란 없을 것입니다

 

   한 번 들고 나온 가방은 바꿀 수 없습니다

   내팽개치거나 구겨버릴 수도 없습니다

   가방은 이미 한 몸입니다. 하지만

   좀 더 무거운 그 가방이야말로 선물이었음을,

 

   때론 가방과 가방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두루마리가 공개되지요. 하늘 뒤흔든 악몽이며

   절규와 침묵까지도 골격을 드러냅니다

   그 가방이 그의 햇빛을 좀 비틀었을 뿐이라고,

 

   “네 이년, 네 년이 FBI의 끄나풀이지?

   네 뒤에 졸개들이 줄줄이 따라오고 있구나!

   나를 산 속으로 끌고 들어가 돌로 쳐 죽일 테지?

   그리고 신문에는 ‘미당은 잘못 살았다’

   그렇게 내고 말 것 아니냐?”

 

   선생님, 그 말씀이 무엇인지를 이제 압니다

   두려워하시던 눈빛에 걸려 저는 차마 병문안도

   못 갔습니다. 겨우 산길에만 섞이었는데…,

   오늘 이 빗장을 벗긴 까닭은

   선생님 200세 때엔, 저도 여기 없을 것이기에

 

   선생님 50주기에도 아주 그럴 것이기에

   무거웠던 그 가방 열어 보일 마지막 손이기에

   여태 묻어온 한 줄 어렵사리 꺼냈습니다

   국화꽃이 연꽃이 바람이 그리도 푸른 돌이었지요?

 

   선생님, …, …그곳은 봄이신가요?

   아득한 거기서도 이 무렵 보이시나요?

 

                                        -전문-           

  

'그룹명 > 나의 근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휨 현상  (0) 2015.12.08
이슬 프로젝트-10  (0) 2015.10.13
협시 4  (0) 2015.09.04
이슬 프로젝트-13  (0) 2015.07.01
협시 5  (0) 201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