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2015-10월호 <기획특집 _ 미당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서정주를 노래하다>
투명가방
정숙자
누구나 태어날 때는 가방 하나씩 들고 옵니다
좀 더 무거운 가방 맡겨진 이가 있고요
조금 덜 무거운 손가방 주어진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디에도 가벼운 가방이란 없을 것입니다
한 번 들고 나온 가방은 바꿀 수 없습니다
내팽개치거나 구겨버릴 수도 없습니다
가방은 이미 한 몸입니다. 하지만
좀 더 무거운 그 가방이야말로 선물이었음을,
때론 가방과 가방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두루마리가 공개되지요. 하늘 뒤흔든 악몽이며
절규와 침묵까지도 골격을 드러냅니다
그 가방이 그의 햇빛을 좀 비틀었을 뿐이라고,
“네 이년, 네 년이 FBI의 끄나풀이지?
네 뒤에 졸개들이 줄줄이 따라오고 있구나!
나를 산 속으로 끌고 들어가 돌로 쳐 죽일 테지?
그리고 신문에는 ‘미당은 잘못 살았다’
그렇게 내고 말 것 아니냐?”
선생님, 그 말씀이 무엇인지를 이제 압니다
두려워하시던 눈빛에 걸려 저는 차마 병문안도
못 갔습니다. 겨우 산길에만 섞이었는데…,
오늘 이 빗장을 벗긴 까닭은
선생님 200세 때엔, 저도 여기 없을 것이기에
선생님 50주기에도 아주 그럴 것이기에
무거웠던 그 가방 열어 보일 마지막 손이기에
여태 묻어온 한 줄 어렵사리 꺼냈습니다
국화꽃이 연꽃이 바람이 그리도 푸른 돌이었지요?
선생님, …, …그곳은 봄이신가요?
아득한 거기서도 이 무렵 보이시나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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