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시 4
정숙자
햇빛이 가장 맑게 가라앉힌 언어를 푼다
일 년, 혹은 이 년 전 일들이 천 년 밖에서 창틀을 바라본다.
강물이 흐르다 깊어지면 문득 소리가 없다했던가. 한 계절 푸
르던 내 갈빗대도 이제 절반쯤은 가늘어져 삐걱거리거나 덜컹
거리지 않는다.
사회에 섞여 사람에 섞여 사물에 섞여도
뭉텅 비었다. 뭉텅 비었다는 것이 빠져나갔음의 증명이 될
수 있다면, 그 ‘뭉텅’은 몹시 크거나 자잘한 무엇들이 꽉 찼던
흔적일 것이다. 이제 이대로 하늘이나 바람이나 구름이나 산이
나 친해야겠다.
천 년 밖으로 만 년 밖으로 마음을 말을
가거라. 가거라. 소멸에 닿을 때까지 흘러 가거라. 노 저어~
저어~ 남은 기억도 보내야겠다. 한 생애가 저물기 전에 한 시절
이 가는 것은 불문율이다. 우리가 잊은 어느 왕조도, 바다 밑 너
른 도시도.
*『문학과 창작』2015-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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