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협시 4

검지 정숙자 2015. 9. 4. 16:21

 

 

    협시 4

 

    정숙자           

                                             

   

    햇빛이 가장 맑게 가라앉힌 언어를 푼다

 

  일 년, 혹은 이 년 전 일들이 천 년 밖에서 창틀을 바라본다.

강물이 흐르다 깊어지면 문득 소리가 없다했던가. 한 계절 푸

르던 내 갈빗대도 이제 절반쯤은 가늘어져 삐걱거리거나 덜컹

거리지 않는다.

 

   사회에 섞여 사람에 섞여 사물에 섞여도

 

   뭉텅 비었다. 뭉텅 비었다는 것이 빠져나갔음의 증명이 될

수 있다면, 그 ‘뭉텅’은 몹시 크거나 자잘한 무엇들이 꽉 찼던

흔적일 것이다. 이제 이대로 하늘이나 바람이나 구름이나 산이

나 친해야겠다.

 

   천 년 밖으로 만 년 밖으로 마음을 말을

 

   가거라. 가거라. 소멸에 닿을 때까지 흘러 가거라. 노 저어~

저어~ 남은 기억도 보내야겠다. 한 생애가 저물기 전에 한 시절

이 가는 것은 불문율이다. 우리가 잊은 어느 왕조도, 바다 밑 너

른 도시도.

 

 

   *『문학과 창작』2015-가을호

'그룹명 > 나의 근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슬 프로젝트-10  (0) 2015.10.13
투명가방  (0) 2015.09.28
이슬 프로젝트-13  (0) 2015.07.01
협시 5  (0) 2015.07.01
협시 3  (0) 201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