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변(通辯)하라, 변화와 진통 속에서 / 금은돌(문학평론가)
죽음의 곡선
정숙자
직선의 한 끝은 코너다
직선의 다른 한 끝은 삶이며
양 끝이 맞닿은 그 직선은 원으로 복귀한다
발자국과 발자국을 잇는 직선 하나하나가 인생을 그려나간다. 고유한, 비슷비슷한 발자국 위로 다른 발자국이 포개지는 동안 아장아장 세워졌던 최초의 직선들은 꼬부라지거나 시들거나 온갖 곡률을 경험하며 멀리멀리 돌아나간다.
뻗어나감에 있어 코너의 섭렵이란 얼마나 값진 수업이었던가. 그러나 직선은 그 무엇도 다시 체험할 수 없는 코너가 자신의 한 끝에 존재한다는 걸 모른 채 뒤로 발자국을 내버리며 한 발 앞의 구름판에 눈길을 모을 뿐이다.
코너에는 보이는 코너와 보이지 않는 코너가 있다. 그 중 보이지 않는 코너란 시간과 공간이 반대로 지나가는 교차점에 위치하며 직선의 처음과 끝이 거기 몰려버리려는 임계점을 의미한다. 직선의 생존곡선을 ‘기류’라 해도 좋을까.
떠오르던 비명이 끊어졌다
누군가 낀 것이다
양 끝이 맞닿은 직선 하나가 공으로 복귀한다
-『시작』, 2010년 가을호
시인 정숙자에게 직선은 인생으로 비유된다. 직선은 첨예한 인식의 날이자, 체험의 저장고이다. 시인은 “직선”이라는 외줄 위에서 두 발을 내딛는다. 그 이유는 직선 위에 “구름”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꿈이자, 시인이 이루고자 하는 경지가 될 것이다. “구름”을 좇아가는 길에 “최초의 직선들”은 “꼬부라지거나 시들거나 온갖 곡률을 경험”한다. 직선은 시인의 마음에 들어와 칼날 같은 상처를 주었지만, 시인을 그것을 딛고 일어선다. 당연히 시행착오가 발생한다. 실수는 시행착오를 낳고, 잘못은 자책을 낳고, 후회는 절망을 낳는다. 직선은 수시로 시인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워왔다. 그러나 시인은 말한다. “뻗어나감에 있어 코너의 섭렵이란 얼마나 값진 수업이었던가.”
정숙자는 삶의 고비를 넘기는 일을 “섭렵”한다고 말한다. 섭렵한다는 것은 농축된 경험과 깨달음을 자신만의 영양분으로 소화시키는 일이다. 섭렵한다는 것은 무엇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자신만의 한계를 넘어서며 생의 밑거름을 쌓는 일이다. 과거는 버려지지만 인생의 경륜은 넓어지고, 지혜는 축적된다. 그 진리를 아는 시인은 “구름”을 향해 집중하며 걸어나간다.
그곳에서 “기류”가 발생한다. 직선 위에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직선 위에도 유행이 있고 흐름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군가” 끼었을 때 발생한다. 침입이다. 외부 침입자가 발생하면 사회적 가면을 써야 한다. 그렇기에 “곡선”을 “죽음”이라 명명한다.
원은 정체성을 숨기게 만든다. 창작에 집중하는 순간을 방해 받는다. 표면적으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둥글둥글해 보일 뿐, 사실은 모면하고 싶은 회피이다. 오히려 허정(虛靜)의 상태를 놓치게 한다. 한계를 딛고 넘어서야 하는데, 사선 너머에 “구름”이 있는데 곡선 안에서는 “구름”이 사라지고 정체성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시인은 “복귀”를 거부한다. 복귀는 자신을 둥글게 하는 일이고 타협하는 일이고, 방관하는 일이다. 시인에게 직선은 앞으로 뻗어갈 수 있는 힘을 주기에, 시인은 직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시인은 “직선”으로, 새장의 문을 연다. 전통이라는 새장에 갇혀 있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다. “직선”은 닫혀있지 않기에, 도약할 수 있다.
서정주 시인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져 있는 시인 정숙자. 그녀에게 직선은 시를 쓰기 위한 수련이다. 낡은 서정에 머물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움을 향한 자신만의 채찍질이다. 그녀는 뼈의 정신으로 시를 써 왔다.(필자는 정숙자 시인의 시 정신을 이렇게 명명하고 싶다.) 작품 하나를 발아시키기 위해 백여 매의 퇴고 용지를 필요로 하고, “막대기가 셋”만 모여도 시를 쓰고 “막대 기 둘만” 있어도 나머지 한 개 부러뜨려 시를 쓸 정도였다. (「무료한 날의 몽상 -無爲集2」) 담금질을 막 마친 단단한 시어들이 바로 그녀의 “직선”들이다. 그녀에게 시는 절실함이자 자기 수양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유협은 ‘허정(虛靜)’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적 기질을 잘 다스려 키우는 양기(養氣)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창작은 일반적인 사유방식과 달라서, 지나치게 고심한다고 해서 작품이 써지지 않는 법이다. 글은 마음을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될 무엇이 맺혀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조급증을 버리고 감정의 흐름을 느긋하고 편안하게 따라가야 한다. 유협은 수양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마음 가득 차오르는 진실한 감정들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토로하는데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자연스런 과정을 펼쳐내기 위해 유협은 개성적인 기질을 다스려 키워야 함을 강조하였다.
*『애지』2010-겨울호
---------------------------------------
* 금은돌/ 경기도 안성 출생, 2008년 『애지』로 등단
------------
* 금은돌 평론집『한 칸의 시선』에 수록(시작 비평선 0017)/ 2018. 8. 13. <천년의시작> 펴냄
'평론가가 읽은 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한용_행위가 이루어지는 지점 (0) | 2013.01.14 |
---|---|
입속의 공/『시현실』편집위원들이 읽은 지난 계절의 좋은 시 (0) | 2013.01.14 |
이병헌_현실과 시적 환상/ 붕우유친 : 정숙자 (0) | 2012.09.21 |
산다는 것의 의미 : 환상과 실재의 거리/ 김석준(시인, 문학평론가) (0) | 2012.03.20 |
김명원_ 4色의 여름시, 응고된 부재 사이로 틈입힌 열망들 (0) | 2011.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