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승리법*
정숙자
그림자의 힘으로 사는 거야
그림자는 밟힘의 힘으로 사는 거고
어둠을 봐
그림자가 없잖아
걷는다는 것은 밟는다는 것이고 밟는다는 것은 나아간다
는 것이고 밟힌다는 것은 한순간 누군가의 대지가 되어준다
는 뜻이야
그렇지만 그 누구라도 맨 먼저 자신의 그림자를 밟는 거야
맨 나중에도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자신의 그림자 위로 자
신의 그림자와 함께 쓰러질 거야
그러니까 그림자는 힘, 기댈 곳이야
어떤 이가 너를 밟고 지나간다면 그 순간 너는 그에게 힘
이 되어주는 거지
너는 그를 자라게 할 거야
또 다른 이는 그를 밟고 지나갈 거고
모두들 그렇게 진화해 왔을 거야
조물주는 먼저 물을 흐르게 하거나 식물의 싹을 틔운 게 아
니라 태양 속에 그림자부터 심으셨던 거야
태양조차도 그림자가 없으면 안 되었던 거지
너는 너 자신의 그림자야
그림자는 우리를 자라게 하고, 우리는 다시 그림자를 온
전케 하고
* 건달패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세상으로부터 모멸을 당하면서도 속으로
는 자신이 승리자라고 여기며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주인공 ‘아큐’에서 비롯
된 용어(루쉰,『아큐정전』)
-『시현실』2006년 가을호 집중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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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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