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쓰가무시병*
정숙자
쓸쓸함A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식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쓸쓸함A는 처음부터 쓸쓸함A였을
리 없다
쓸쓸함A를 어딘가에 내버린다면 지구 한 귀퉁이 검어질
것이다
쓸쓸함A를 묻을 곳이란 내 가슴뿐, 거기
쓸쓸함A가 쌓이고 쌓여 섬을 이루면 꽃씨가 날아와 움틀
지도 몰라. 꾀꼬리 몇 마리 부화할지도 몰라. 오랜 쓸쓸함A
를 위해 노래 불러줄지도 몰라. 하지만 정말 아무짝에도 쓸
모없는 무덤이 되어진대도 쓸쓸함A는 (밀봉된 내 가슴뿐) 아
무데나 버려선 안 돼
쓸쓸함A를 끌어안은 쓸쓸함B 위로 밤이 내린다
쓸쓸함A의 이면엔
누가 · 언제 · 어디서 · 무엇을 · 어떻게 · 왜…의
스토리 전모가 적혀 있다
쓸쓸함B는 ‘진화론’에 힘입어 쓸쓸함C로 자란다
쓸쓸함C는 뭇 쓸쓸함X에게 ‘적응’을 가르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향기로워질 때까지
사뿐사뿐 일어서는 바람의 무릎을 본뜰 때까지
*쓰쓰가무시병(tsutsugamushi disease) : 들쥐 등에 기생하는 털진드
기가 사람의 몸에 들어와 전파하는 가을철 열성전염병. 법정전염병
-『불교문예』200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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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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