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단체 초상화/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3. 8. 23. 00:47

 

   

     단체 초상화

                                                     

       정숙자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눈까풀 서쪽으로 내려졌을 때 우리는 가장 나쁜 죄를 짓

는다

  결혼-섹스-종족보존의 등식과 함께

  먹고 먹히는 무간지옥으로 천국의 아이들을 끌어내린다

  황- 흑- 백- 무제한 유괴한다

  맑- 넓- 깊- 푸른 하늘은

  지상으로 떨어진 아이들을 묵묵히 바라본다

  마을에서 도시에서 으앙으앙 으앙

  천국의 기억 깡그리 지워진 채

  나고 자라며 전락/진화하는 인간, 인간들

  되풀이 되풀이 되풀이 대낮에조차 천국의 아이를 약탈 수

태한다

  다만 생고생하고 갈 뿐인 길로

  아들 딸 손자 손녀 무작정 풀어 놓는다

  눈까풀 동쪽으로 들어 올린 하늘, 그 오랜 망막 속으로

  우리의 가장 슬픈 죄가 촘촘히 들어박힌다

    -『계절문학』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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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