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오늘은 8년 후, 1월
정숙자
그 집 향해 버스에서 내린다
비닐봉지에 참외 몇 알 사들고 드나들던 집
푸성귀 한두 단 싸들고 찾아갔던 집
서문 받으러…… 새 시집 끼고……
생신날 국화꽃도 안고 갔던 집
캉캉캉 대문간 무너뜨리던 외국종 흰 개 극성맞던 집
길과 길, 구름과 구름, 안개와 안개 골목 끝에선
“시인이 세상에 붙댕기면 안 돼” 누누이 이르시던 집
봄물 오른 연못가 상사초 한 뿌리 파주셨던 집
셋이 앉아 맥주잔 부딪히던 집
“나는 알아보는 눈이 있어!” 용기 한 뼘 올려주신 집
홀로이 묵념하고 돌아오는 길
쇠사슬에 감긴 채 기울어진 철대문 보고 오는 길
주인 없어 쪼글쪼글 새붉은 감이 텅 빈 하늘에 서너 말 총총
그때 그 개 짖는 소리 한사코 따라오는 길
<151-080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마을 A지구 1071-
11>
연하장 쓸 수 없어 다녀오는 길
8할의 바람으로 9할을 그린 스승님 문패 닦고 오는 길
-『문학정신』2008년 가을(재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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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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