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2013-가을호 <서평- 이 계절의 시집>
시인의 길
-정숙자 시집,『뿌리 깊은 달』(천년의 시작, 2013)
반경환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돈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자동차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비행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컴퓨터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스마트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물질이나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하나의 생존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이 물질과 문명의 이기들은 우리 인간들의 언어(문자)에 비하면 매우 하찮고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에 의하여 우리 인간들의 사유의 진전이 가능해졌고, 이 사유의 진전에 의하여 모든 문명과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언어는 우리 인간들의 구세주이며, 이 언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만물의 영장이 되었던 것이다.
시인은 언어의 사제이며, 예술가 중의 예술가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의 역사는 언어의 역사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언어 영역의 확대는 세계 영역의 확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별자리와 수많은 행성들을 명명한 것도 시인이었고, 수많은 사물들과 수많은 동식물들을 명명한 것도 시인이었다.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준 것도 시인이었고, 하늘을 찌를 듯한 환희에의 기쁨으로 이 세상의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인도해준 사람도 시인이었다. 태초에 시인이 있었고, 태초에 시인이 그의 말씀으로 이 세계를 창조했던 것이다.
시는 시인의 꽃이며, 그 꽃은 어떤 꽃보다도 더욱더 아름다운 꽃이다. 시는 시인의 생존의 노력의 결정체이며, 아름답고 행복한 삶의 구체적인 증거라고 할 수가 있다. 마음이 더럽고 때 묻은 자도 시를 쓸 수가 없고, 눈앞의 자그만 이익을 위해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자도 시를 쓸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도 시를 쓸 수가 없고, 이 세상의 삶을 저주하거나 이 세상의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자도 시를 쓸 수가 없다. 요컨대 생존만이 최고인 삶에서는 행복이 꽃 피어나지 않고,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에서 우리 인간들의 행복은 꽃 피어나게 된다.
정숙자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인 『뿌리 깊은 달』-『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열매보다 강한 잎』뒤를 이어서 - 은 ‘고통의 깊이’의 소산이며, 그 고통을 향유하고 있는 자의 ‘행복의 깊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모남 메마름 게으름 서두름 없이/ 물결 한 결 헤집음 없이/ 산 넘어 또 산 넘어 서방정토까지 혼자이지만” 그러나 “강물의 호수의 바다의 심장이 되는”「뿌리 깊은 달」- 이 달은 이미 생사의 운명을 초월한 달이었던 것이다. “절벽이란/ 죽음의 입구였다” 하지만, 그러나 “그런 절벽도 처음에는 우리 집 앞마당 버금의 지반이었다. 그러나 지반은 언제라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 나는 뒤늦게 날개를 마련하는 일에 착수했다. 비상(飛翔)만이 별의별 절벽들을 일거에 그어버릴 도구였기에. 그리고 폐활량을 늘렸다.// 심신만 건강하다면/ 내 식탁과 컴퓨터만 깨지지 않는다면/ 절벽은 능히/ 놀 만한 장소”(「절벽에서 날다」)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꿈이 없는 자에게는 절벽이란 다만 최종적인 종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꿈을 꾸는 자에게 있어서의 절벽이란, 자유로운 날개를 얻기 위한 성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숙자 시인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명품의 꿈”(「희망 값」)으로, 그 천 길 벼랑을 날아오르고, “글 쓰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기쁨 있으니 짓는 즐거움, 발표하는 즐거움, 독자를 만나는 즐거움이라고…… 저는 거기 이름 붙였습니다. ‘문인삼락(文人三樂)’ 뒤집으면 곧바로 문인삼고(文人三苦)가 보이지요, 만”(「나의 작시기(作詩記」)이라는 시구에서처럼, 그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향유하게 된다.
진정한 시인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을 산다. 고통을 외면하면 고통은 사자처럼 덤벼들지만, 그 고통을 살면 그 고통이 양처럼 온순해진다. 시인은 고통의 주인이 되고, 고통은 시인의 충복(忠僕)이 된다. 고통이 있는 한 그는 행복하고, 고통이 있는 한 그는 영원불멸의 삶을 산다.
정숙자 시인의 ‘뿌리 깊은 달’은 적극적으로 고통(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고통(운명)을 극복해가는 달이다. 당신은, 당신은, 당신 앞의 절벽에서 날아오를 것인가, 아니면 그 절벽에서 더욱더 아름답고 멋지게 추락할 것인가? 정숙자 시인은 전자의 길을 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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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경환/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1988년『한국문학』과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저서『시와 시인』, 『행복의 깊이』1, 2, 3, 4권, 『반경환 명시감상』1, 2, 3, 4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문장들』1, 2권. 『비판, 비판, 그리고 또 비판』1, 2권 등 현재 계간시전문지 『애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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