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시애(作詩愛)
정숙자
시는 정확하기가 마치 수학과 같다.
시인은 꿈꾸지 않는다. 그는 계산한다.
-장 꼭도
최신판 국어사전이 선물로 왔다. 조용한 시간을 틈타 나는
사전과 상견례를 가졌다. 투명 비닐로 책가위하고, 손글씨로
된 주소와 바코드, 등기우편 요금표 등을 오려 뒤표지 안쪽
에 붙였다. 우연히 눈에 띤 낱말 ‘능선’과 인사도 했다. 그리
고 맨 앞 속지에 “내 사전에 <대충>이란 없다”고 쓰고 ‘대
충’에 빨간 줄을 그었다. 자를 대고 정확히 가뒀다. (예전에
는 아예 종이를 대고 풀칠해 버렸지만)
대충(부) ①어림잡아. ¶ 대충 스무 명가량 올 것이다. ②
건성으로. 대강. ¶ 시간이 없어서 대충 치웠다. 본딧말: 대
총(大總).
내 사전에서 대충을 없애는 일쯤 간단하다. 대충은 입도
뻥끗 못하고 쫓겨났다. 그런데 앙갚음하면 어쩐다? 언젠가
나를 대충 죽이거나 대충 묻거나 대충 태운다면…… 아아아
아 용서해다오. 미안하다, 사랑한다. 원고지 바깥에선 친하
잖니! 이렇게 주인공으로도 모셨잖니. 이해해 줘 제발. 그리
고 넌 알아둬야 해. 빨간 오랏줄로 단단히 묶여 있다는 거 잊
어선 안돼. 꼼짝 못할 거야 영원히, ―괜찮지?
-『문학나무』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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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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