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발자국
정숙자
나무만큼만 서있다 가자
나무만큼만 그림자 뉘었다 가자
나무만큼만 태양 우러러 이슬방울 빚어 올리다 가자
나무만큼만 삶을 마시고 이 세상에게 산소 먹이다 가자
나무만큼만 바람에게 말 걸다 가자
히말라야를 바이칼호수를 타클라마칸을 이태리를 프랑
스……를
밟아보지 못함은 나무 탓 아니므로
불가사의의 지느러미와 무량대수 깃털을 지녔으나
제자리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음은 나무 탓 아니므로
나무만큼만, 언제든 나무만큼만 그렇게 힘껏 푸르게 밝게
하루를 살면 이틀이 채워지는
이틀을 살면 사흘이 깊어지는
언덕 위 나무만큼만 훨훨훨 버리고 가자
나무만큼만 별빛 모으다 가자
나무만큼만 새 아침 깨우고 가자
나무만큼만, 나무만큼만 둥근 기둥의 나무만큼만
-『미네르바』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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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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