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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가_처용의 시대/ 윤석산(尹錫山)

검지 정숙자 2024. 12. 2. 01:43

<고전의 현대시 변용>

 

    처용가

     -처용의 시대

 

    윤석산尹錫山

 

 

  매일같이 휠체어를 타고

  그는 이곳에 온다.

  어디에서부터 그는 오는지

  가족이 누구인지

  하루 세 번의 끼니를 먹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를 못한다.

  다만 명상의 얼굴을 하고

  그는

  세상을 향해 앉아 있을 뿐이다.

 

  지하철 계단을

  무릎뿐인 다리로 기어 내려와

  한 장의 빛바랜 담요,

  그리고 깨어지지 않는 양재기.

  그가 세상을 향해 내어놓은 것은

  이것들이 전부가 된다.

 

  지하철, 오가는 발자국에

  그는

  때때로 묻혀버리기도 하다가

  던져주는 동전 몇 닢

  그가 우리 앞에 있음이 비로소 확인되기도 한다.

 

  잃어버린 두 다리마저도 잊어버린 듯

  양재기 안으로 떨궈지는 짤랑거림을

  들을 수 있는 귀마저, 그는 버린 듯.

  그는 차라리

  하나의 바위로 굳어버린 듯,

  그의 침묵으로부터 버려진 세상의

  사람들은 오늘도

  다만 그이 곁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전문(p. 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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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 문인 보고서 2 『시인 윤석산』 '고전의 현대시 변용' 에서/ 2022. 9. 28. <화성시립도서관> 펴냄/ 비매품

 * 윤석산尹錫山/ 1947년 서울 출생, 1967년《중앙일보》신춘문예(동시) 당선 & 1974년《경향신문》신춘문예(시) 당선시집 『바다 속의 램프』『온달의 꿈』『처용의 노래』『용담 가는 길』『적 · 寂』『밥나이, 잠나이』『나는 지금 운전 중』『절개지』『햇살 기지개』등, 저서『동학교조 수운 최제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