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현대시 변용>
처용가
-처용의 시대
윤석산尹錫山
매일같이 휠체어를 타고
그는 이곳에 온다.
어디에서부터 그는 오는지
가족이 누구인지
하루 세 번의 끼니를 먹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를 못한다.
다만 명상의 얼굴을 하고
그는
세상을 향해 앉아 있을 뿐이다.
지하철 계단을
무릎뿐인 다리로 기어 내려와
한 장의 빛바랜 담요,
그리고 깨어지지 않는 양재기.
그가 세상을 향해 내어놓은 것은
이것들이 전부가 된다.
지하철, 오가는 발자국에
그는
때때로 묻혀버리기도 하다가
던져주는 동전 몇 닢
그가 우리 앞에 있음이 비로소 확인되기도 한다.
잃어버린 두 다리마저도 잊어버린 듯
양재기 안으로 떨궈지는 짤랑거림을
들을 수 있는 귀마저, 그는 버린 듯.
그는 차라리
하나의 바위로 굳어버린 듯,
그의 침묵으로부터 버려진 세상의
사람들은 오늘도
다만 그이 곁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전문(p. 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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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문인 보고서 2 『시인 윤석산』 '고전의 현대시 변용' 에서/ 2022. 9. 28. <화성시립도서관> 펴냄/ 비매품
* 윤석산尹錫山/ 1947년 서울 출생, 1967년《중앙일보》신춘문예(동시) 당선 & 1974년《경향신문》신춘문예(시) 당선, 시집 『바다 속의 램프』『온달의 꿈』『처용의 노래』『용담 가는 길』『적 · 寂』『밥나이, 잠나이』『나는 지금 운전 중』『절개지』『햇살 기지개』등, 저서『동학교조 수운 최제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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