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문학이 나아가는 길/ 조병무

검지 정숙자 2023. 11. 4. 01:30

 

    문학이 나아가는 길

 

     조병무

 

 

  육십여 년 문학의 길을 걸어오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나는 오래전에 호금조胡錦鳥라는 새 한 쌍을 길렀다. 깃이 퍽 아름답고 그 색채도 화려한 놈이라 많은 사람들이 귀여워하는 새였다. 아침저녁으로 노래하는 소리는 구슬이 구르는 듯, 은은한 빛깔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애지중지 기르던 이 새의 수놈을 내가 그만 죽게 한 일이 있다. 그것은 나의 실수에 의한 것이었다. 바퀴벌레 몇 마리가 새장 바닥을 기어다니기에 그 새를 다른 새장에 옮기고 살충제를 뿌려야 되는 것을 그 순간 귀찮은 생각에 새를 넣어둔 채 살충제를 바닥에 살짝 뿌렸다. 그리고 그 모래 위에 신문지를 깔아주려고 하는 순간 수놈이 바닥에 내려와 모래를 한 입 물었다. 순간 호금조 수놈은 파드닥거리며 죽고 말았다. 그렇게 아끼고 귀여워했던 호금조 한 놈을 잃은 것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람은 흔히들 살아가는 과정에서 결과를 중시하면서 과정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호금조에 밀어닥칠 일을 의식했더라면 그 새의 죽음을 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순간의 상태를 가리지 못한 실수였다.

  또 다른 일화 한 토막   

  내가 알고 있는 한 조각가가 있다. 그는 하나의 작품을 구상에서 완성의 단계로 끌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이다. 특히 작품이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밤잠을 설치기까지 한다. 곁에서 보기엔 이미 완성된 것 같은데도 한쪽을 쓰다듬고 깎아내고 또 손질한다. 그는 마무리되어가는 작품 전체를 어루만지고 애무한다. 손끝이 작품의 구석구석을 쓰다듬는다.

  그것은 응고된 집념의 끝 순간이다. 마지막 순간의 정열, 최후의 한 순간이 그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 조각가가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기울이는 노력은 본인이 아니고는 알 수 없다. 그것은 한순간 한순간의 생각이 나아가는 방향과 같다. 예술작품 하나의 완성에는 이렇게 심오한 각고의 힘이 있어야 한다.

  문학에 몰두하면서 한 작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와 관련되는 모든 자료를 찾아 상하좌우 관계없이 긴 시간을 가다듬으며 결론에 도달하도록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 작품에 대한 강한 미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작품에 대한 애착은 한 마리의 새를 기를 때의 생각과 차등이 없는 즐거움이라 하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 생활도 마찬가지다. 한순간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는 문제는 일생의 전체를 저울질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조각의 마무리가 어찌하여 그 작품에만 국한될 것인가? 인간이 살아가는 자체가 조각가가 만드는 하나의 작품과 같은 리듬인 것이다.

  인생의 리듬은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우주의 조각가가 분산된 '나'의 작품을 구상화시켜 간다. 나를 구상화시켜가는 과정에 있어 연륜의 하나하나가 그대로 마무리의 연속이다. 하나의 시간이 끝나는 이 순간, 나의 인생의 자화상이 어떤 작품으로 구성되느냐 하는 결과에 대한 중요한 순간이다.

  생각하라, 그리고 그 한순간의 마무리를 어떤 형태로 형상화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최후 순간의 완성을 위해 손질하는 조각가와 같이 나 자신도 그 순간의 마무리를 존귀한 것으로 갈구하듯 다듬어야 한다. 문학의 길도 이와 다르지 않다.  (p. 3)

 

                              (시인· 문학평론가 · 「문학의 집 · 서울」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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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3. 9월(263)호 <문학의 향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