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손흥민 정신
차주일
바람 없이 흔들리는 물방울을 마를 때까지 지켜본 적 있다. 둥근 수막에 햇빛 한 점이 찍혀 있다. 지구가 해를 들이기 위해 자전하듯 물방울이 햇빛 한 점을 들이기 위해 오대양의 파도와 육대주의 등고선처럼 흔들렸다. 물은 자신의 성분과 상극인 햇빛을 들임으로써 사라지는 존재였다. 상극과 대치함으로써 나를 사라지게 하는 게 새롭게 태어나는 것임을 보았다. 햇빛도 물도 함께 사라졌지만, 물의 후생과 빛의 후생은 얼룩으로 하나였다. 얼룩은 태막이 터진 모습이었다. 그때 보이지는 않았으나 정신 같은 무형이 태어난다는 걸 알았다.
범종 소리가 맥놀이로 흔들리고 있었다. 파형이 다른 두 흔들림이 서로 성부聲部를 내어주고 선율을 받아들이며 하나의 소리로 퍼지고 있었다. 사람의 고막으로 들을 수 없는 너머까지 넘어가 보이지 않는 마음이 되고 있었다. 그때 당목에 맞은 통점 하나가 보였다. 범종 소리는 여명처럼 퍼지며 사라졌고 아침 풍경이 남았다. 이와 닮은 소리가 바흐의 음악이다. 바흐 이전의 주류를 이루던 호모포니 음악은 하나의 선율을 위해 여러 선율이 반주가 되는 것이라면, 바흐의 폴리포니 음악은 고음부와 저음부의 선율이 각각 독립적인 연주로써 하나의 소리로 작용한다. 이 프리즘은 음악 작곡의 기초를 남겼다.
사람의 눈동자에 사람이 들면 갈등이 시작된다. 이것은 결이 다른 두 영혼의 수정과 같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눈동자 속 사람이 바뀌고, 눈동자 속 사람이 변하는 대로 내가 바뀐다. 각각의 개성을 인정하고 타자를 중심으로 존중했기 떄문이다. 타자의 눈동자 속에서 자세와 목소리를 빌린 사람만이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너를 사랑해"란 말이 타자의 눈동자 속에서 태어났다면 믿겠는가. 보이지 않는 말 한마디가 영혼의 얼룩이 된 것을 믿겠는가.
유럽 축구 리그에서 활동 중인 손흥민 선수에게서 보았다. 한 인간이 마음에 찍어두고 머리로 감추어 둔 고뇌는 오래 묵어 외부로 드러나 각고로 해석되었다. 소년이 은이가 되는 동안, 젊은이가 한 상징[icon]이 되는 동안, 어떤 다짐을 가졌는지 보였다. 동양[Orient]을 동등한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 배타적인 서구[Occident]에서, 황인종을 조롱하는 게르만과 앵글로 색슨의 인종차별 속에서, 투명 인간 취급당하는 멸시와 모욕 속에서, 반주자가 아닌 연주자로서의 성부를 갖기 위해, 제 마음에 들인 '극복 정신' 하나로 '손흥민 정신'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운동 실력으로 증명되는 게 아니다. 정신은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훤히 보이는 인간성의 증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성은 타자에 관대하나 자신에게 엄격한 삶의 방정식을 푸는 길고 긴 난제이다. 이렇듯 추상을 구상으로 증명하는 것은 배타적인 감정을 수용적인 이성으로 견뎌낸 수행이어야만 가능하다. 이로써 손흥민은 폐쇄성이 짙은 배척 문화에 동행이라는 포용 감정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배타적인 대상들이 자신의 마음에 '다짐'으로 찍어두는 점 하나가 된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점은 수도자와 수행의 관계처럼 타인에게만 보이는 삶이다. ▩ (p. 192-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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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주일_산문집 『출장보고서』 2023. 8. 17. <포지션> 펴냄
* 차주일/ 전북 무주 출생, 시집『냄새의 소유권』『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합자론合字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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