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 외 1편
정희성鄭羲成
어찌 강물에 뼈마디를 흘리랴
떠돌았거니 꼿꼿이
저 비탈진 언덕에
직근으로 내려서자
푸른 몸을 다시 입으리니
허혈성 세포로 비틀거리던 시간은
그만 잊자 물 한 잔 내주고
덜컥거리던 빈 그릇의
시간은 그만 잊자
치렁치렁 고단했던 등줄기에서
푸른 순이 돋고
이십사 자모 밖의
식물성 화술과
푸른 눈
잊혀질 리 없는 별리
삼만 광년쯤 어느 새벽녘에는
너와 뿌리에서 뿌리로 만나는
푸른 등 하나도 켜지리니
어찌 거친 강물에
너와 나의 한 생을 흐르게 하랴
-전문(p. 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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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냄새
-북방소년장성기 2
훈민정음을 깨치면서 거룩한 영어 갓 뎀도 배웠다 눈 파란 양키 장교 어린 딸을 꾀려 초인종을 누르면 매미가 울었다 파벽돌 집 간유리에 담쟁이 손이 출렁이는 걸 두 살 아래 곱슬머리는 서양 귀신이라 우겼다
이모들은 스무 살이 차면 댄스홀로 시집갔다 곱슬머리는 손톱이 긴 어린 엄마와 골목을 떠났고 우린 진종일 눈깔사탕을 빨았다 운천극장 소각장 페퍼민트 껌종이에선 아메리카 냄새가 났다
우린 의정부 다음이 아메리칸 줄 알았다
가칼봉 너머 동해보다 가까운 줄 알았다
곱슬머리동생이 정말 정말
아메리카로 살러 간 줄 알았다
-전문(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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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중섭 아재처럼』에서/ 2023. 8. 10. <시산맥사> 펴냄
* 정희성鄭羲成/ 1993년『현대시』로 등단, 시집『하귤의 껍질을 벗기며』『지금도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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