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불쌍하도다 나여/ 이상국

검지 정숙자 2023. 9. 3. 01:56

 

    불쌍하도다 나여

 

    이상국

 

 

  시인들이 시를 쓰는 이유와 목적은 시인의 수만큼이나 다르겠지만 대개는 자신의 마음이나 이야기를 남에게 알리고 싶은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으면 좋은 시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잊히고 만다. 오늘도 많은 시인들이 독자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쓰고 버리고 내놓기에 바쁘다.

  정현종 시인의 작품 중에 이런 시가 있다.

 

    詩를 썼으면

    그걸 그냥 땅에 묻어두거나

    하늘에 묻어둘 일이거늘

    부랴부랴 발표라고 하고 있으니 

    불쌍하도다 나여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이 보이도다

       - 정현종 「불쌍하도다」 전문

 

  정현종 시인은 시에 마음을 담았으면 됐지 그것을 꼭 남에게 내보이고 싶어 하는 자신을 가엾게 본 것이다. 이는 시인으로서의 자존이나 겸양의 표현일 수도 있고 한편 수많은 시인들이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는 시작 행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일 수도 있다. 

  평생 방외인으로 불우의 생을 살다간 매월당 김시습은 나무에다 시를 쓰기도 하고 아무데나 생각나는 대로 쓰고는 버렸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양주 수락산 자락 수락정사에 머물 때는 술과 지필묵을 가지고 계곡의 물살이 빠른 곳에 자리를 잡고 종이쪽지 일백 장을 만들어 시를 쓴 뒤 물에 떠내려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소일하면서 종이가 떨어져야 하산했다고 한다. 세여불합歲餘不合의 생을 살며 그는 정현종 시인의 시처럼 숨어도 보이는 가난의 옷자락을 감추고 싶었거나 스스로 불쌍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복궁을 복원하고 쇄국정책을 편 인물로 역사에 기록된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난을 잘 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석파石坡'는 그의 호다. 기록에 의하면 추사에게서 난을 배웠고 추사는 그의 난을 높게 평가하였다고 한다. 석파는 어느 날 무심하게 난을 치고 그것을 지인에게 선물했다. 나중에 아무리 해도 그런 난이 나오지 않아 결국 다른 난을 주고 되찾아 왔다고 한다. 석파 불이난不二蘭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마음먹은 바가 무연하고 여지없이 표현된 작품 앞에 작가 자신도 숙연해지거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티브이에서 한 대장장이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는 칼을 전문으로 하는, 소위 유명한 장인도 아닌 시골 대장간의 평범한 대장장이였는데 주문받은 작업을 하다가 어쩌다 칼이 마음먹은 대로 나오면 내놓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의 '내놓고 싶지 않다'라는 표현에 감복했다. 그야말로 고수이자 장인의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석파가 난을 치고 대장장이가 칼을 벼리듯 시인들도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렇지만 되돌려 받거나 내놓고 싶지 않은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거니와 내남없이 뭔가 됐다 싶으면 묻어두기보다는 부랴부랴 세상에 내놓고 평가를 기다리기에  바쁘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기회는 아직 무진장 남아 있다. 때가 되면 석파의 불이난이나 대장장이의 내놓고 싶지 않은 칼 같은 시 한 편쯤 찾아올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면 정현종 시인은 못 했지만 나는 그걸 하늘이나 땅에 묻어둘 작정이다. 자랑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나도 내놓지 않고 몰래 나만 두고 볼 것이다. ▩ (p. 3)

                           (시인)      

 

   ------------------------------------

  * 『문학의 집 · 서울』 2023. 8월(262)호 <문학의 향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