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한 편의 시가 장편소설 한 권에 필적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강인한

검지 정숙자 2023. 7. 2. 02:48

 

    한 편의 시가 장편소설 한 권에 필적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강인한

 

 

  한 편의 시가 장편소설 한 권에 필적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치열하게 쓰고 읽는 것 말고는 나에게 다른 것은 별로 가치가 없었다. 그러므로 문학은, 아니 시는 내게 하나의 종교였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여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내가 크게 뒤틀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이라는 종교의 힘이 컸다. 언제부턴가 진심을 담아 시를 쓰는 것이 결국은 자기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p. 5)

 

  태양이 가장 크고 밝은 별이 아니란다. 태양의 밝기보다 10만 배가 더 밝고 그 무게는 태양의 25배가 되는 별이 발견되었다. 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연구팀이 하와이에 있는 직경 10미터의 케크망원경으로 지구로부터 4천 8백 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바람개비별(WR104)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 해 4월과 6월에 촬영한 사진에는 이 별이 바람개비 현상을 일으키는 모습과 바람개비 전체가 회전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한다. (p. 161)

 

  문학에 있어서 신즉물주의新卽物主義라는 흐름이 있습니다. 원래는 1920년대 독일의 미술 운동에서 출발하였지요. 당시 유행하고 있던 표현주의나 추상주의와는 대조적인 사실주의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경향을 말합니다. 문학에 있어서도 주관적 · 환상적인 경향을 배제하고 사물에 대한 냉정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를 강조하는 흐름이 신즉물주의 경향입니다. 대상에 글쓴이의 주관적 감정을 될 수 있으면 집어넣지 않고 무엇보다도 실제의 사물에 대하여  냉정한 관찰을 통해 치밀한 묘사를 위주로 한다는 것입니다. (p. 169)

 

  젊은 시인의 의욕적인 장시 한 편(전문 31쪽, 2백자 원고지 53매 분량)을 읽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읽었습니다. 선배 시인으로서 후배 시인에게 뭐라고 말해 줘야 할까. 내가 읽고 느낀 것이 오독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오독일망정 진지하게 읽고난 솔직한 독후감을, 역작을 발표한 젊은 후배 시인과 다른 독자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p. 270)

 

  창조주(신)가 우주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인간은 창조주 자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노라고 하는 기독교의 교리를 나는 믿지 않습니다. 니체는 말하기를, "신은 죽었다"고 부정하였지만 나는 그와는 다른 결론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신이란 관념을 창안해 낸 것일 뿐이라고. (p. 386)

 

  서정춘 시인이 내게 백록白鹿이란 호를 주었다. 사슴과 내가 어딘가 인연의 끈이 닿아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래전 외우 이만재 카피라이터가 내 시집 『전라도 시인』(1982)에 쓴 「인간 강인한姜寅翰을 말한다」를 보면 " ···체중 미달로 군대에서 받아주질 않았기 때문에 대학을 나오자마자 시작한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금까지 17년째 하고 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느냐 하면 늘 봐도 '미소 짓는 사슴'이다. 시인이라고 하는 뿔을 달고 있어서일까··· 나는 단 한 번도 강인한의 화내는 얼굴이나 짜증내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사슴이다. 정갈한 동물."이라고 발문에 쓰고 있다.  (p.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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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인한 비평집 『백록시화』에서/ 2023. 6. 15 <포지션> 펴냄

  * 강인한(본명, 강동길)/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시집『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강변북로』『튤립이 보내온 것들』『두 개의 인상』, 시선집 『어린 신에게』『신들의 놀이터』『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시 비평집『시를 찾는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