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우리라 부르며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부분)
김남곤/ 시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나는 평소 '우리'라는 대명사와 '함께'라는 부사를 즐겨 쓰는 편이다. '우리' 문단도 일사불란하게 어깨 짜고 나서면 거대한 공동체 조직으로써 막강한 에너지를 촉발할 수 있다.
옛날 우리 마을에 울력다짐할 때 징치고 앞장서는 노익장 한 분이 계셨다. 울력이란 여러 사람이 함께 힘겨운 일감을 손쉽게 해치우는 일이 아니던가. 우리는 그 노인을 무서워했다. 십 리가 넘는 학교에 갈 때도 함께 떼 지어 가지 않으면 야단을 치셨다. 그 노인은 골목길에서 우리를 만나기만 하면 땅바닥에다가 하늘 천天자를 써서 가르치셨다. 우리가 하늘을 모르면 죄짓는다고 하셨다. 하늘이 우리에게 밥도 주고 착하게 사는 법도 가르쳐 준다고 하셨다. 물꼬 싸움을 하면 모두가 다 함께 아프다고 하셨다. 기다란 살포를 높이 짚고 동구 밖에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굽힘이 없는 노장老將 같았다. 그땐 그 가르침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건성으로 지나쳤었다. 우리가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야 빛이 난다는 금언이었지 싶다.
나의 시 가운데
"한사코 죽고 살기로 정붙이고 사는 세상이다
햇살도 공작처럼 꽁지 펴주고
달빛도 으스스한 성황당길 마 나가 주고
풀도 얼키설키 약차 올라 짱짱해야 결초보은할 수 있다
진드기도 징그럽게 붙어먹고 산다고 핀잔 들어야 진드기다
우리도 그대 이름 하늘처럼 푸르게 푸르게 불러주지 않으면 눈 밝은 하느님도 잘 모르신다"
-전문-
라는 , 「함께」가 있다.
그렇다. 우리가 우리를 값지게 불러주는데 신神인들 어찌 우리 하나 하나의 존재가치를 모르실 리가 있겠는가.
지난해 우리는 여산재餘山齎에 돌 하나를 예쁘게 다듬는 울력을 했다. 여산문화상 운영위원회(이사장 국중하 수필가)가 서둘러 전국의 오지 가운데 한 곳인 완주 동상면 여산재에 신달자 시인의 시비를 세운 것이다. 그날 제막식에 참석한 시인은 "저는 돌에 이름이 새겨진다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그만큼 지워질 수 없는 것 앞에서는 겸손해져야 하니까요. 오늘 여산재의 돌에 이름이 새겨졌다는 것은 제가 앞으로 남은 인생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인간답고 가장 시인답게 살라 하는 그런 하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능한 한 미워하지 않고 가능한 한 좋다, 사랑한다, 네가 최고야, 이런 말을 하면서 살려고 합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여산재에는 김형석 황금찬 김우종 고은 허소라 유현종 수안 스님 최불암 안숙선 씨 등 문인 · 명사 21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골짜기에 울려 퍼진 시인의 그 언어 그 몸짓 하나만으로도 어지러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과 문학과의 유대를 극명하게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강조한 가장 인간답고 가장 시인다운 세상이 바로 오늘이어야 하고 우리가 꿈꾸는 미래이어야 하니까. 우리는 지금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는 인간성 퇴락 현상과 맞닥뜨려져 있다. 이 무서운 파고 앞에 우리 문학과 문단은 견고한 방파제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뇌해야 한다. (p.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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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3-4월(650)호 <권두언> 에서
* 김남곤/ 시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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