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이규리
건축물이나 건축 행위에도 틈, 즉 사이의 미학이 있습니다. 병산서원 만대루의 정자가 아름다운 건 못질하지 않은 사이의 견고함 때문인데요, 나무와 나무가 요철 형식으로 서로의 사이를 물고 물리며 가장 단단한 이음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들보는 대들보끼리, 기둥과 기중, 마룻장과 마룻장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간격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조화라 여겨집니다. 노련한 목수가 아니어도 지혜로운 대목은 팽창과 수축을 예비해 적당한 사이를 마련하지요. 그렇게 서로 사이를 지닌 무기물로서의 건축물은 세상이라는 공간에 또 다른 사이로 존재, 여백을 만듭니다. 그냥 비어 있다고 여백이 아닙니다. 병산을 마주한 휑한 공간에 서원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그 공간 안에 여백이 탄생했습니다. 강과 병산 사이, 병산과 서원 사이에. (p. 19-20)
시가 힘을 가지는 때는 그런 순간이다. 시의 힘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취한 일보다 놓친 일, 안다고 말하는 지점보다 모른다고 느끼는 지점, 환호하는 순간보다 좌절하는 순간에 시를 만날 것이다. 고통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쉬 위로하고 받으려는 데는 시가 오지 않는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넘어지는 것. "실패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라는 베케트의 말은 인간의 태도와 함께 시의 자리를 보여준다. 말하고 싶으나 말해지지 않는 불통인 것, 보이지도 않으며 만질 수도 없는 난관인 것, 그리하여 시가 아니면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그곳! 말하자면 그런 '자리'에 흩어진 절규와 한숨들이 겨우 시일 것이다. (p. 19-20)
세상의 줄 선 모든 존재들은 슬프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차례나 질서를 위한 자발적인 대열을 제외하면 사실 모든 줄은 가혹하다. 뭐가 그리 중요한지 모른 채 어릴 적 뙤약볕을 견디던 긴 조회 시간과 훈화 시간이 그러했고 아버지의 기억에서 나오는 가난의 배급 줄이 그러했으며 군대의 한 치 삐뚤어지지 않은 정확한 대열이 그러하다. 강요된 줄, 더구나 자로 잰 듯 맞춤한 그 줄들은 인간의 줄이 아닌 듯해 더욱 불편했다. 나는 로터리 화단에 줄 맞추어 핀 꽃들에게서도 어지럼을 느낀다. 그렇게 부동의 존재들은 죄다 술픈 것이다. (p. 140)
시에 재능이 있던 언니는 일찍 하늘나라로 갔다. 나는 오래 슬퍼하다가 결심했다. 언니 대신 내가 그 붉은 방을 이어가리라. 그렇게 문학은 왔다. 왜 사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왜 쓰는지 모른다. 모른다는 말 외에 현재를 설명할 방도가 없다. 시를 택했던 이유는 성향이었다. 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고요, 생략해도 되는 경제성, 에둘러 표현하는 매력, 지치지 않게 하는 특성이 좋았다. 로맹 롤랑은 말했다. "훌륭한 사람은 오직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아니, 문학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기보다 내가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다. (p. 106-107)
불안했으므로 피해갈 수 있었고 불안했으므로 예비할 수 있었고 불안했으므로 넘어갈 수 있었다면 불안이야말로 꽃이고 구름이고 미래였다고 말하고 싶다. (p.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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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리 산문집 『사랑의 다른 이름』에서/ 2023. 5. 25. <아침달> 펴냄
* 이규리/ 1994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앤디 워홀의 생각』『뒷모습』『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당신은 첫눈입니까』, 산문집『시의 인기척』『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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