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짧았던 사랑처럼 2월이여
이규리
2월은 여느 달보다 이틀이나 사흘이 짧다. 꼬리가 짧은 짐승처럼 2월은 그래서인지 어정쩡해 보이기도 한다. 새해는 이미 지났고 새 학기는 아직 오지 않은 때, 직전이나 직후의 공백처럼 어찌 보면 잉여의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2월은 겨울도 아니고 봄 또한 아니어서 딱히 이거다 할 만한 무엇도 아닌 그런 시기이다. 우리 안에 조금씩 깃든 슬픈 존재 의식이 그러할까. 그러나 2월이 없으면 1월도 없고 3월도 없다. 나는 그 2월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나무와 나무 그 사이를 비집고 드는 햇살 한 줄기나 흔들리는 가지를 느끼게 하는 바람 한 줌 같은 효과를 2월이라 말하고 싶다. 없어도 누구 하나 눈치 채지 못하지만 있으므로 전체를 숨 쉬게 하는 여분의 가치. 공터에 이는 바람이라도 좋겠다. 시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 일반적으로 시인이 주제나 비유에 힘을 쏟는다고 여기겠지만 실은 조사나 어미에 마음을 더 기울인다. 미묘한 맛은 거기서 나온다. 마찬가지로 다 쓰고 난 뒤 마음을 다해 살펴보는 자리는 의미를 지닌 문장이기보다 그것을 비어 있게 하는 행간일 때가 많다. 행간의 말 없음과 말 줄임이 시를 크고 깊게 한다.
2월이 조사나 어미 혹은 행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앞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어떤 여운이나 설핏함 같은 것 말이다. 어느 가정이나 좀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이 집을 지키고 부모를 모신다. 내 언니가 그러했고 욕촌 오빠가 그랬다. 그들이 좀 수월하게 보인 것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말을 아꼈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이 돋보이도록 자신을 뒤로 둔 때문이란 걸 우리는 나중에야 알지 않을까. 2월은 혹한의 겨울을 견뎌온 너그러움과 봄을 잉태하기 위해 묵묵히 기다리는 사려를 품은 달이다.
그렇게 너그러움을 품은 달이므로 어쩌면 마음먹은 일들을 한 가지씩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며칠 작정하고 쌓아두었던 책을 읽거나, 어찌어찌 부은 적금으로 가까우나 소홀했던 사람과 떠나는 2박3일의 충전 여행이 맞춤이겠다. 또는 마음의 빚이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먼저 찾아가보는 그런 일들도 2월에 어울릴 것 같다. 또한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시기도 어쩌면 2월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2월은 서러움을 묵묵히 견딘 사람의 모습처럼 말이 없다. 그리고 어떤 주장도 없다. 세상이 유지되고 역사가 계속되는 건 2월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성할수록 인간은 무력하기 마련이고 그 무력을 대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제도와 규칙을 만들었던가. 와중에서 서로 경쟁자가 되어 밀고 밀리며 먼저 나아가려 할 때 2월은 뒤에서 그 현장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1년 혹은 전생으로 보더라도 먼저 가거나 미리 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하지만 결국 함께 승하거나 함께 멸한다는 걸 2월은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2월에는 우리가 한번쯤 고요해지면 좋겠다. 말 대신 바라봄에 정성을 기울이면 좋겠다. 지금 누가 울고 있는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가 누구인지 살피는 시간이면 좋겠다. 추위의 뒤끝이라 아직 바람이 차므로 내 옷이 누군가가의 등을 덮어주었으면 좋겠고, 혹시 내 말과 행동이 상처였다면 지금 찾아가 먼저 손 내밀어 화해를 청했으면 좋겠다. 2월은 그런 달이므로, 그런 화해의 시기이므로, 그 정성스러움이 나를 향해 오는 축복의 눈보라였으면 좋겠다. 2월이여, 짧고 설운 사랑처럼 돌아보면 짠한 내 안의 웅크린 존재가 있다. 다. ▩ (p. 13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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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리 산문집 『사랑의 다른 이름』에서/ 2023. 5. 25. <아침달> 펴냄
* 이규리/ 1994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앤디 워홀의 생각』『뒷모습』『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당신은 첫눈입니까』, 산문집『시의 인기척』『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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