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두 개의 초록
이규리
새해가 시작된 지 어제인 듯 싶은데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뭔가 새로운 걸 꿈꾸었고 달라지기를 바랐는데 그게 잘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새롭다는 것이나 참신하다는 문제에서 시인이나 예술가들은 실상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이란 남보다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새로움을 실천하는 일은 있음에서 없음으로, 보이는 것에서 보지 못한 것으로, 밖에서 안으로,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것이어서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롭다'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지금까지 본 적 없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의외의 마주침이거나 우리의 관념을 뒤집을 정도의 낯선 진실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에 이상의 시 「오감도」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이 느꼈던 놀라움은 상상을 초월하여 아직도 그 해석이 분분할 정도이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인 1917년, 멀리 유럽에서 마르셀 뒤샹이 서양식 소변기를 떡하니 미술관에 전시품으로 출품한 그 발상 역시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될 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들은 예술 행위를 통하여 우리의 관념과 삶의 태도를 바꾸었으며 예술이라는 장르를 달리 보라보게 해주었다.
참다운 예술이란 익숙한 관념을 비웃거나 타성에 젖은 뻔한 사고방식을 견딜 수 없어 하는 데서 비롯된다. 좀 더 다른 가치의 추구나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의 발현이 예술적 자산인 것은 분명하다. 이를 통해 진부한 생각들을 전환하며 획일화된 사고의 틀을 갱신해 좀 더 다양한 관점을 추구하게 한다. 그러나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놀랄 만한 무엇'을 던져주는 새로움의 추구에 지지를 보낸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진실된 인간의 삶이 간과된다면 예술 행위란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어떠한 것도 삶을 벗어나는 새로움이란 없기 때문이다.
새로움이 비가시적인 것에만 국한될 때 그 의미는 축소될 것이다. 글을 쓰면서 느낀 진실이 있다면 실상 새로운 것이란 가까운 데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가 버린 것이나 덮어둔 것들, 혹은 쓸데없다고 도외시한 것 가운데 있었다. 우리는 가깝다거나 흔하다는 이유로 절문근사切問近思*의 이치를 지나쳐 오지는 않았을까. 홀대했던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지향이었던 것 말이다.
우리에게 사고나 재료는 이미 고갈된 상태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찾으러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주변을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바빠서 놓친 것, 소홀히 지나간 것, 또는 큰 욕망을 쫓느라 버린 진심들, 그런 것을 다시 보고 뒤집어 보고 재해석하는 일이야말로 새로움을 찾는 행위일 것이다. 같은 초록이 흰색을 두르고 있을 때와 검은 색을 두르고 있을 때 각기 다른 색으로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지나쳐 온 새로움이란 것도 하나의 이름을 가진 두 개의 초록이 아니었을까.
새로움이되 새로울 것 없는 그것은 겸손한 자리에서 사물들의 관계를 살피는 일이다. 작은 것을 놓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 더 간절한 자세로 다가가는 일, 어느 날 의자가 말을 걸고 볼펜이 걸어 다니지 않을까. 세탁 봉지에 싸둔 양말이 싹을 밀어 올리는 소리, 초겨울 실존을 견디고 있는 야윈 넝쿨을 눈이 덮어주는 시간,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새롭고 언제까지나 새롭고 어떻게든 새로운 언어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자신의 게으름이거나 모자람 탓일 거라고 믿는다. ▩ (p. 331-134)
* 『논어』 19편 「자장」에서. 간절히 묻고, 가까운 일부터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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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리 산문집 『사랑의 다른 이름』에서/ 2023. 5. 25. <아침달> 펴냄
* 이규리/ 1994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앤디 워홀의 생각』『뒷모습』『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당신은 첫눈입니까』, 산문집『시의 인기척』『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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