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나는 이것을 당시 '뜸부기 이론'이라고 명명했다/ 홍시율

검지 정숙자 2023. 6. 10. 22:23

 

    나는 이것을 당시 '뜸부기 이론'이라고 명명했다

 

     홍시율/ 시인 · 문화평론가

 

 

  어릴 적에 마을 한가운데 있던 논둑 수풀에 찔레나무가 있었는데 여름이면 뜸부기 한 마리가 와서 살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계속 울어대고는 날개를 허우적거려 곧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잡힐 듯하다가도 발 앞에서 날아가곤 해서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가짜 행동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 마음이 가상해서 나는 그 수풀을 헤집지 않았다. 답이 요리조리 움직이는데 실제의 답은 제3의 곳에 있었다. 나는 이것을 당시 '뜸부기 이론'이라고 명명했다. 우리 마음은 최소한의 방향이 나의 중심을 잡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즐거움을 안겨줄 뜸부기의 병아리가 아니라 내 마음이 가리키고 있는 중요한 대상이다. 확인하고 선택해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 (p. 64-65)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오류는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산수 시간에 선생님이 3×4 문제를 내어서 손을 들었는데 내가 지목이 되었다. 정답을 말했는데 그 선생님은 내 답변이 틀리다고 다른 학생을 다시 지목했다. 나는 '12요.'라고 외쳤는데 그 선생님은 '10이요.'라고 들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귀가 안 좋았을 것이라고 몇 번을 자위했지만 그래도 그 황당함과 불쾌한 감정은 오랫동안 남았다. 그때의 나의 해석은 세상은 뭔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귀착했다. 아마도 많은 책을 경유해야 했던 정상 사회에 대한 갈증이 시작된 곳일 것이다. (p. 271)

 

  내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의 끝점이면서 시작점이다.

  언제나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확인하기 위해 정처없이 여행하며

  방랑할 필요는 없다. (p. 279-280)

 

  악착같이 살고자 하는 자가

  이루고자 꿈꾸는 자를 능가한다.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극복하고 황제가 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p. 90-91)

 

  독일의 통일은 동독공산당 대변인의 말실수 떄문에 일어났다. 1989년 여름 체코 프라하 서독대사관에 동독주민들 수천 명이 난입하여 망명신청을 했는데 이에 서독과 동독은 협상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11월 9일 동독 주민들의 여행법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언제부터 여행자유화 조치가 유효한가에 대한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을 받은 동독공산당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지금 당장부터!'라고 대답했다

  여행법 개정안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해서 나온 발언이었다. 동독주민이 마음대로 검문소를 지나다닐 수 있느냐는 물음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기자는 본국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긴급타전을 보냈다. 다음 해 1990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독일통일이 선포되었다. (『나무위키』편집)

  우리도 이와 같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p.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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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시율 수상록 『마음을 여는 속도』에서, 2023. 5. 26. <굿웰스북스> 펴냄

 * 홍시율/ 경기 안성 출생, 2016년 계간 『문학의 봄』으로 등단, 시집『사람이 별이다』『사랑이 지나갔으므로 할 일이 많아졌다』『아무 쓸모 없는 가슴』, 에세이집『삶의 관성들 다시 읽기』『잃어버린 고양이에 대한 예의』『나를 안아줄 시간이다』등, 사색가, 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