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불황의 그늘, 자아와 사랑의 한계(일부)
- 2023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분석
김정수/ 시인
2023년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발표되었다. 매년 여러 신문사에서 관성적으로 치르지만, 문청들(나이를 떠나)은 '신춘'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신춘은 중독이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끊지 못한다. 올해 시 응모 편수가 중앙 일간지 2,700편(경향신문)에서 5,376편(조선일보), 지방지/전문지1,000~2,000편으로 흔히 말하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당선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좌절의 쓴맛을 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음은 당연지사다. 당선율을 높이려 신문사 및 심사위원의 성향을 파악해 응모하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은 중앙지, 나이 많은 사람들은 지방지에 응모한다는 말도 떠돈다. 실제 올해 중앙지 당선자 중 20대 4명, 30대 2명, 50대 1명이다. 나이가 밝혀진 지방지/전문지의 당선자는 30대(한국경제신문) 1명, 40대(광주일보, 영남일보, 경상일보, 경인일보) 3명(경상일보와 경인일보는 동일인)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50~60대였다. 유력 문학잡지에서 시작한 응모 시 생년월일 표기 의무가 슬그머니 신춘문예로까지 옮겨갔다. 의도는 모르는 바 아니지만, 문학은 나이순이 아니므로 사라져야 할 폐단 중 하나다. 그동안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경희대 국문과, 고려대 국문과, 중앙대 문창과, 서울예대 문창과 등에서 2023년 중앙지 당선자를 내지 못한 반면 명지대 문창과는 재학생 1명(동아일보), 졸업생 1명(경향신문), 석사과정 1명(한국일보)등 3명을 배출해 주목을 받았다.
응모작 수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신춘문예에서 중앙지 선호나 쏠림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문단 활동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예전에는 지방지 출신 당선자도 중앙지나 유력 문학잡지를 통해 재등단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문학잡지 출신이 중앙지뿐 아니라 지방지로 재등단하는 역전 현상도 심심치 않게 확인된다. 올해도 중앙지(경향신문)와 지방지(광남일보, 한국불교, 경인일보/경상일보) 등의 등단자들이 문학잡지와 ○○문학대상이나 ○○○신인문학상을 탄 기성문인이었다. 신춘문예를 통한 재등단은 신인의 자리를 빼앗는 것, 신분 세탁용이라는 구설에 오를 수 있으므로 신중할 일이다. 이제는 지방지/전문지 신춘문예와 문학잡지의 양적 증가, 시류의 변화로 문단 활동을 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경계도 사라졌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등단하느냐가 아니라 작품의 수준이다.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해 당선작 중에서 눈길을 끄는 시는 3편 내외다. 특히 올해는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 됐다는 것이 주변의 공통된 평가다.
참신성과 새로운 경향, 완결성을 중시하는 신춘문예 당선시는 현재 지점이 아닌 미래 지향을 중시한다. 이는 "한국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미래의 작가들"(동아일보), "새로운 감수성과 문제의식으로 빛나는 작가 지망생의 참신한 글"(한국일보), "한국문단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갈 작가들을 발굴"(강원일보)과 같은 응모 공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응모작의 경향은 "경기 불황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의 여파인지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담은 응모작이 적지 않았다."(동아일보), "코로나 이전의 고립이 상상이었다면 현재는 선택권이 없는 고립."(한국일보), 펜데믹의 고통을 반영하듯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실험적인 작품이 많았다."( 서울신문), "많은 작품에서 삶과 죽음이 여전히 주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었다."(광주일보) 등에서 보듯이 전반적으로 코로나19 펜데믹, 국내외 정치 불안과 경제 불황의 여파로 삶과 죽음, 고립과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인류 공동체나 사회/환경 문제와 같은 보다 넓은 세계에서 나와 가족, 사랑과 이별처럼 '나'에 침잠하는 축소적이면서 폐쇄적인 속성이다. (p. 54-56) <이하 75페이지(終)까지는 책에서 일독 要: 블로그 註>
----------------------------
*『시마詩魔』 2023-봄(15)호 <시마詩魔 특집/ 2023년 신춘문예>
* 김정수/ 시인,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홀연, 선잠』『서랍 속의 사막』
'한 줄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의 힘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이규리 (0) | 2023.06.18 |
---|---|
나는 이것을 당시 '뜸부기 이론'이라고 명명했다/ 홍시율 (0) | 2023.06.10 |
신체의 고통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김효숙 (0) | 2023.05.28 |
독자의 탄생_문학의 신화와 역사, 그 너머(발췌 셋)/ 최진석 (0) | 2023.05.18 |
한국문예지의 어제와 오늘(전문)/ 이승하 (0) | 2023.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