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천리포 수목원에서 시(詩)를 만나다/ 박숙희(수필가)

검지 정숙자 2023. 6. 3. 14:14

<에세이 한 편>

 

    천리포 수목원에서 시를 만나다

 

    박숙희/ 수필가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로 알려진 민병갈 원장님이 우리나라 최초로 세웠던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은 목련꽃의 종류가 가장 많은 수목원이다.

  민병갈 원장님(1921-2002, 81세)은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지만 한국을 제2의 조국이라 부르며 사랑하셨던 분이다. 청년 시절 정보장교로 한국을 오게 되었고 유난히도 한국을 사랑하여 최초로 귀화한 미국인이다. 그의 본명은 칼 페리스 밀러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한국 음식은 물론 한복을 무척 좋아했고 결혼도 하지 않고 홀어머니와 둘이서 천리포수목원에 정착하여 나무와 숲과 꽃을 사랑하며 살았다.

  1962년에 친구들과 이곳으로 여행을 하던 중에 한 가난한 농부가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그러니 땅을 사달라고 간청을 하는 것을 보고 딸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되어서 그떄의 시세보다 높게 땅을 사준 것이 천리포수목원의 땅 매입 시작이었고 그 소문이 마을에 퍼져 마을 사람들이 자기 땅도 사달라고 간청하므로 차츰 땅의 매입이 늘어 수목원 땅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부유한 금융인이기도 했던 파란 눈의 외국인은 3백 년 뒤를 보고 수목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외국을 다닐 때마다 희귀한 나무들과 꽃들을 들여와 이 수목원에 심고 자라게 하였고, 오직 꽃과 나무를 돌보며 이곳에서 살았다. 한복을 입고 웃으며 찍은 사진이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적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미국 펜실베니아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한국을 사랑했고, 이곳 천리포수목원의 먼 앞날을 생각하며 일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또한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정받게 만든다. 1962년부터 부지 매입을 시작하여 1970년에 천리포수목원울 조성하기 시작한다.

  18만 평에 이르는 넓은 땅에 희귀한 나무들과 꽃들을 심고 생태 교육관과 밀러 가든(Miller garden)을 조성한다. 목련은 400여 종이 넘는다 하니 우리나라에서 귀한 목련이 가장 많은 수목원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쉴 의자도 있고 군데군데 쉼터가 아름답다. 처음으로 보는 희귀한 진홍색 목련꽃이 활짝 피기도 하고, 아직도 봉오리가 채 피지 않은 목련들도 있다. 목련꽃은 천리포수목원을 대표하는 꽃이다.

  꽃의 지름이 40센티나 되는 초대형 목련이 피었는가 하면, 꽃잎이 50개를 넘는 별목련이 아름답다. 꽃잎이 노란 황목련을 비롯해서 흔히 볼 수 없는 진귀한 목련꽃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커다란 나무 밑에 피어 있는 '사순절 장미'라 불리는 꽃도 인상적이다. 할미꽃 색깔과 비슷한 색을 띠고 작은 키에 겸손하게 피어 있는 모습이 함초롬히 예쁘다. 이 꽃의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한 어린 소녀가 예수님께 꽃을 선물로 바치고 싶어 했는데 꽃이 없어서 기도하자 천사가 내려와서 이 꽃을 소녀에게 주어 예수님께 드렸다고 한다. 사순절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처음 보는 꽃의 아름다움이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일본에서 많이 자란다는 삼나무숲도, 잎에 독성이 있어서 마취목이라 부른다는 나무들도 진귀하다. 동백나무 삼지닥나무 무궁화 태산목 니포피아 나무숲이 아름답다. 그 길을 걸으며 아름답고 진귀한 꽃들에 취해 시인이 되고 외국인이지만 한국을 사랑했던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이 또한 시가 되어 가슴을 젖게 한다. 처음 보는 여러 종류의 목련꽃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는 사월의 노래를 부른다.

  키가 작은 노랗고 하얀 수선화꽃이 무리지어 넓게 자리 잡고 피어 있는 풍경은 먼 유럽에 온 듯 이국적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수선화는 낯선 땅으로 이사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듯 여린 미소가 짠하다. 

  서울에서는 꽃이 지기 시작한 벚꽃이 아직도 꽃망울째 남아 있다. 바닷바람으로 인한 차가운 온도 탓인지 가을에 피는 벚꽃의 향기도 독특하다고 한다.

  천리포수목원이 자리 잡은 태안반도는 유난이 가을이 길어서 단풍이 오래 가고 아름다워 다른 곳에서 보고 느낄 수 없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겨울철에도 짙푸른 침엽수들과 붉게 물든 호랑가시나무 열매를 볼 수 있고,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설강화 풍년화 등의 100여 종의 겨울 열매와 겨울 꽃들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멸종 위기의 식물을 보유하고 관리하고 있으며 1만 여 종의 다양한 식물 종류가 자라고 있다.

  만리포해수욕장 옆으로 있는 천리포수목원은 그 옆으로 백리포 십리포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바다와 숲이 이어지고, 푸른 하늘과 많은 종류의 꽃과 새들이 살고 있는 시 마을에는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 영혼이 지금도 살고 있다. 시인이 아니어도 저절로 가슴속에서 시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아름다운 수목원 숲 속에서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들과 함께 오래도록 함께 살고 싶다. 그 숲속에는 마르지 않는 시의 샘이 흐르고 있었다. 외국인 민병갈 원장님의 한국 사랑으로 세워진 천리포수목원이 오래도록 잘 보존되고 가꿔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p. 31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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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문학』 2023-5월(651)호 <수필>  에서

  * 박숙희/ 2007년『한맥문학』으로 수필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