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와 숨바꼭질하고 있나(부분)
-편집자로 산다는 것
김안녕
▣옥석 가리기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신하는 일이 업무의 30%는 되는 것 같다. 특히 근 2년 사이에는 투고 이메일이 부쩍 늘었다. 몇몇 문학 전문 출판사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영향도 있고, 또 그만큼 내가 일하는 출판사의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투고 원고가 책으로 출간될 확률은 글쎄, 3% 정도 될까. 그만큼 희박한 확률. 그럼에도 편집자는 투고 메일을 허투루 엄기지 않고, 글쓴이가 책에 담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무엇인지, 독자가 흥미를 느낄 만한 부분이 있는지, 팔릴 것인지 등을 생각하며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온몸의 촉을 동원하여 '낼 것인가' '반려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약 2년 전, 오마이뉴스 기자로 활동하는 H의 기획안과 원고 뭉치를 이메일로 받았다. H는 집에서 가족으로 살던 개(똘이)가 아버지의 결단으로 개장수에게 넘겨지고, 그로 인해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청년이었다. '똘이'를 애도하기 위해 동물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H는 단계적 채식을 감행하고, 동물권 단체에 가입하고, 생추어리(sanctuary,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이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주는 보호시설)를 방문하고, 자원봉사를 하고, 동물권 관련 기고 활동을 하며 자신이 삶의 영역을 점차 확장시켜 나간다.
H의 글은 최근이 이슈를 담고 있는 동시에 동물을 사랑하는 진심과 믿음직한 태도가 문장마다 묻어났다. 망설일 이유가 없어서 메일을 받은 지 며칠 만에 전화를 하고 출판사 근처에서 만났다. 그리고 원고를 접할 때 느꼈던 생각은 만남을 통해 더욱 확고해졌다. H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좋은 원고는 좋은 반려자를 만났을 때처럼(만큼은 아니지만) 느낌이 '팟' 온다. 글은 결국 사람이 쓰는 것이고, 작가로서 좋은 자세를 지난 사람은 그 태도가 글에 고스란히 스며 있기 마련이니까.(물론 좋은 원고가 잘 팔리느냐 하는 문제는 조금 다른 사안이다. (p.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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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22-여름(26)호 <issue_예술노동> 에서
* 김안녕/ 2000년『실천문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불량 젤리』『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사랑의 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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