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시단의 현대시에 대해
이정현 問 : 오세영 答
이정현: 그러면 교수님은 요즘 우리 시단의 현대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오세영: 요즘 시의 유형이 있어요.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미래파라고 하는데, 20세기 초 1920년대에 유럽에서 대두했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하나예요. 그런데 10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미래파라는 용어가 우리 시단에서 쓰이고 있어요. 그것이 현대시라는 거예요. 지금 한국 시단을 주도해오고 있는 것이 소위 민중의 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중문학이라는 것이죠. 물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에, 공헌을 했지만 한편에서는 시도 정치의 수단이 되어서 결국 문학이 죽고 정치만 남았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어요. 오늘날은 시민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이념으로서는 독자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해요. 자아가 해체되고 주체가 사라지고 중심이 없는 정신세계를 쓴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후기 자본주의 문화 현상을 설명하는 문학 이데올로기이죠. 젊은 친구들의 감성도 그쪽으로 이끌려 신춘문예나 등단하려는 신진 시인들의 현대시 주류가 되었고 하나의 진영이 된 것이죠."
이정현: 요즘엔 시를 읽는 독자들이 없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데요, 또 다른 곳에서는 서정시를 회복하자는 운동이 일기도 해요. 독자가 없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오세영: 1910년 유럽에서 등장한 것이 전위시(아방가르드)에요. 당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획기적인 선을 그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문학작품이 독자들이나 인류의 인간적인 보편적인 가치를 향상하고 더 훌륭한 인간을 만들었느냐는 문제가 있죠. 왜냐하면 새로운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했을 때 가스실에 놓고 수만 명씩 죽였는데 그 방법은 사람 죽이는데 새롭게 창안한 것이지만 가치 있는 일은 아니지요. 그런 면에서 예술이라는 것도 전에 없는 독창적인 거라 해도 다 높이 평가해야 할 것도 아니라고 봐요 난해한 아방가르드적 시에는 독자가 없어요. 유럽에서 아방가르드적인 시 운동이 일어나면서 독자가 없어졌어요. 요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시의 독자가 없어요. 우리나라처럼 시 잡지도, 시단이라는 것도 없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동인 활동을 할 뿐이에요. 그런 형상이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것을 따라 하고 있어요. 결과는 이미 판가름되어 있어요. 시가 죽어버린 거죠. 사실 실험시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1930년대에 이상 시인이 이미 썼어요. 일본에 들어온 유럽 시를 이상이 모방해서 쓴 거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상 시인이 모방이라 할지라도 이미 '실험시'를 썼는데 80년이 지난 후에 현대시 운운하며 새롭다고 주장하니까 말이 안 맞지요. 두가지 문제점은 첫째는 유럽에서 썼던 시를 모방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독자가 다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쓴다는 점이에요. 독자가 없는 시를 쓰는 것이 시를 죽이는 줄도 몰라요.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시적인 감성과 예술성이 있기에 독자가 없는 비극을 깨닫고 나면 언젠가 다시 회복될지도 모르지요." (p. 20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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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현 평론집 『60년대 詩人 깊이 읽기』에서 / 2022. 12. 24. <문학아카데미> 펴냄
* 이정현/ 강원 횡성 출생, 2007년『수필춘추』로 수필 부문 & 2016년『계간문예』로 시 부문 & 2022년『시와편견』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살아가는 즐거움』『춤명상』『풀다』, 시선집『라캉의 여자』, 산문집『내 안에 숨겨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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