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채근담(採根譚)에서 시의 길을 묻다/ 문효치

검지 정숙자 2023. 2. 6. 02:46

<권두언>

 

    채근담採根譚에서 시의 길을 묻다

 

    문효치/ 시인 ·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문학인들이 독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작 활동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공자께서는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基善者而從之"라고 했다. 세 사람만 같이 가도 선생이 있듯이 문학도는 꼭 문학 서적만 읽어서는 안 된다. 역사, 철학, 지리, 사상, 과학 등 다양한 영역의 책들 속에 '아사我師'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문학서가 아닌 채근담에서 시의 길을  찾아본다. 채근담의 저자 홍자성은 혼란스러웠던 명나라 말기 사람으로 입신양명의 길을 가지 않은 은자로서 가난하였지만 청렴한 삶을 살았다. 문학도도 시론가도 아닌 어찌 보면 철학도라 할 수 있는 그의 인품에서 우러나온 채근담에는 난세에 물욕을 극복하고 평상심을 찾기 위한 그의 생활철학이 담겨 있다. 노장老莊과 불교는 물론 유교적 사상까지 포괄한 채근담은 비록 시를 향한 금언이 아니더라도, 일반적 진리가 담겨 있어 시 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1.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度寒 雁去而潭不留影/ 풍래소죽 풍과이죽불유성 안도한담 안거이담불유영"

  바람이 성긴 대숲에 오매 바람이 지나가면 대가 소리를 지니지 아니하고 기러기가 차가운  못을 지나매 기러기가 가고난 다음엔 못에 그림자가 머물지 않는다. 시인이 사물을 대할 때도 선입견을 버리고 생각의 빈터를 확보해야 한다. 심허즉성현心虛則性現 곧 마음이 비어 있어야 본성이 나타나므로 새로운 생각 새로운 의미가 들어올 수 있다.

  가령 '달=그리움, 고향'의 고정된 관념은 이백李白 이후 오랫동안 시에 영향을 끼쳐 왔다. "거두망산월 저두사고향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우리는 머릿속에 박혀 있는 이 생각을 흔들어 비워 내야만 한다. 그래야 그 빈자리에 달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들어올 수 있다.

  시는 시인의 개성적 독자적 인식이 중요하다. 세상의 사물을 기존의 관념이나 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시각으로 보아 내어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의미,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조용히 문을 여는 한 왕조를 본다

  두 여인이 일으키는 어린 왕국이여

 

  저마다의 생애는

  영광과 비극의 대서사시

   -유안진, 「떡잎」 부분

 

  위의 시에서 유안진은 떡잎이 피어나는 것을 대하면서 "조용히 문을 여는 한 왕조"를 보고 있으며 이것을 "대서사시"로 인식하고 있다. 시인은 떡잎을 그냥 식물의 하나로 보지 않는다. 식물의 내면에 숨어 있는 "왕조"를 읽어내고 있다. 일반적 사물인 '식물'이라는 관념을 비웠을 때 새로운 인식 세계가 열려오며 그것이 곧 시가 되는 것이다.

 

 

  2. "盆池拳石間 煙霞具足/ 분지권석간 연하구족"

  좁은 못 작은 돌 하나에도  연하가 깃든다는 말이니 작은 것에서 진지한 의미를 찾으라는 뜻이다. 뜻 깊은 것, 중요한 것은 꼭 거대한 것에만 들어있지 않다. 큰 것, 유명한 것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부터 충분히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으며 시로도 많이 다루어졌다.

  "시사詩思는 화려한 금전옥루金殿玉樓에 있지 않고 도리어 쓸쓸한 시골길에서 일어난다"(조지훈). 작고 하찮은 미물도 다 신의 창조물이며 그들만의 존엄성과 가치가 있다. 그러니 어찌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겉에 보이는 껍질을 꿰뚫고 내면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절구통만 한 먹이를 문 개미 한 마리

  발밑으로 위태롭게 지나간다 저 미물

  잠시 충동적인 살의가 내 발꿈치에 머문다

  하지만 일용할 양식 외에는 눈길 주지 않는

  저 삶의 절실한 몰두

  절구통이 내 눈에는 좁쌀 한 톨이듯

  한 뼘의 거리가 그에게는 이미 천산북로이므로

  그는 지금 없는 길을 새로 내는 게 아니다

  누가 과연 미물인가 물음도 없이

  그저 타박타박 화엄 세상을 건너갈 뿐이다

  몸 자체가 경전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저렇게

  노상 엎드려 기어다니겠는가

  직립한다고 으스대는 인간만 빼고

  곤충들 짐승들 물고기들

  오체투지의 생애를 살다 가는 것이다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강연호, 「개미」 전문

  

  시인은 개미를 한낱 개미로 보지 않고 개미의 삶 속에서 엄청난 의미를 보고 있다. "삶의 절실한 몰두", "오체투지의 생애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아니 "몸 자체가 경전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시인이 아니면 어찌 '개미의 대발견'을 할 수 있었겠는가, 개미의 삶 속에 서려 있는 신의 의지가 깨어나고 있다.

 

 

  3. "人解讀有字書 不解讀無字書 知彈有弦琴 不知彈無弦琴/ 인해독유자서 불해독무자서 지탄유현금 부지탄무현금"

  사람은 글자있는 책만 읽을 줄 알고 글자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른다. 글자 없는 책이란 곧 세상이며 세상은 한 권의 거대한 책이다. 이 책의 페이지마다 많은 뜻과 정신이 들어있다.

  또 사람들은 줄이 있는 가야금은 탈 줄 알지만 줄 없는 가야금은 탈 줄을 모른다. 줄이 없는 가야금이란 솔바람, 계류의 물소리, 새소리, 비 내리는 소리 등 자연계에서 발성되는 소리로 이것들을 내 음악으로 끌어다 들으면 그게 곧 유현금有弦琴이 아닐까. 이들 악기에서도 현묘한 우주와 자연의 생명적 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다.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 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중략)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애들처럼 병신걸음 곰배팔이 걸음으로 돌아오는 새벽

  별들은 점잖지 못하다

  하늘에 들어가 숨고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어 앉은

  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런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신경림, 「주천강가의 마애불」 부분

 

  밤이 되면 견고한 바위로부터 몸 비틀어 빠져나온 부처가 인간의 모습을 따라 한다. "애들처럼 병신걸음 곰배팔이 걸음을" 장난스럽게 흉내 내다가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어 앉"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사마천의 탁월한 문장은 젊은 시절 여행을 한 경험으로 얻어진 것으로, 천하의 대관大觀을 보아 자신의 기를 조장했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문장을 구하면 종신토록 애써도 신기함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는 책보다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자서와 무현금을 더 많이 읽고 들었다.

 

 

  4. "花英草色無非見道之文/ 화영초색무비견도지문"

  인생은 천지자연경天地自然經 속에 놓여 있다. 천지자연경의 구체적 하나가 천지자연경天地自然景이고 거기에 인생경人生景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자연과 사람이 삶 속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어찌 보면 삶 자체가 연속적 경험 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을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시에 반영하는가가 문제다.

  꽃잎도 물빛도 진리를 나타내는 글 아님이 없다. 어찌 풀뿐이겠는가. 세상에 살아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 아니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을 말하고 있다. 사물에 대한 깊은 성찰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 우주의 참뜻과 세상 운용의 원리를 깨닫고 시작에 임할 때 좋은 시는 우리 앞에 스르르 다가오지 않겠는가. ▩ (p.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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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문학』 2023-1월(647)호 <권두언>에서

  * 문효치/ 시인 ·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