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는 2000년대를 통과하면서
<미래파>라는 쓰나미를 만났다
김남호/ 문학평론가· 시인
우리 시는 2000년대를 통과하면서 <미래파>라는 쓰나미를 만났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쓰나미의 순기능을 예찬하는 쪽이지만 역기능도 만만치가 않음을 안다.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문학도 예외일 리 없다. 하지만 제법 유장하게 흐를 줄 알았던 <미래파>에는 불행히도 '미래'가 없었다. 초반의 기세에 비해 그들의 끝은 미약하기 그지없었고, 2010년대에 진입한 뒤 그들의 출몰에 대한 의미와 평가는 찬반으로 갈리면서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며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다.
"2000년대의 어떤 시인들 덕분에 한국시는 '시인(1인칭)의 내면의 고백으로서의 시'라는 일면적이면서도 지배적인 통념으로부터 완전히 지유로워졌다. 이제 시는 누구도 될 수 있고 무엇이건 말할 수 있다. 이런 시들로는 시인의 퍼스낼리티를 짐작하기 어렵다. 이것은 일종의 위조신분증이다. 위조신분증이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혼란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축제였을 것이다." (신형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상속자들」)
"미래파로 지칭되는 시인들은 처음에 자신들에게 던져진 명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자각하기도 전에 시대의 선두주자로 부각되었고, 그들의 시가 문학적으로 크게 성숙될 시간의 축적도 없이 잊혀가야 하는 불행한 운명에 처한 위기의 시인들이었다." (최동호의 「극서정시의 시원과 소통」)
전자는 미래파를 긍정적으로, 후자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전자는 시가 '일인칭 고백의 양식'이라는 오래된 통념을 깨뜨리면서 다양한 '딕션diction을 통해 "누구도 될 수 있고 무엇이건 말할 수 있"는 축제라 했고, 후자는 "성숙될 시간의 축적도 없이 잊혀가야 하는 불행한 운명에 처한 위기의 시인들"의 시대라고 봤다. 어느 쪽의 평가가 더 객관적이고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는 것은 어렵기도 하려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문제는 그들이 휩쓸고 간 뒷자리다. 중앙의 문단에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면 기존의 낯익은 서정시로는 엄두도 낼 수 없게 되었다. 소위 '모던한 시'와 '서정시'의 이분법적 차별화가 강화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던한 시'란 한마디로 '감정의 귀족주의'를 추구하는 '전위적인 시'를 일컫는데 이게 바로 미래파의 전형적인 콘셉트이다. 그렇다면 '감정의 귀족주의'란 도대체 뭘 말하는가.
"기품이 있고 나른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감정적 균형을 잃지 않을 것 같은 태도, 우아하다고 해야 할까 세련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들은 결코 세속의 언어를 쓰는 법이 없다. 지적이고 고상한 단어를 좋아하며 그러면서도 비문에 가까운 문장을 잘 쓴다. 그것이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문장과 기표를 살짝 비트는데 여기서 다양한 뉘앙스가 유리하게 흘러나온다." (박상수, 「귀족예절론」)
그들(미래파)은 "결코 세속의 언어를 쓰는 법이 없"고, "지적이고 고상한 단어를 좋아하며" "비문에 가까운 문장을 잘" 구사한다. 그들의 시에 대해 논할 때 곧잘 동원되거나 어울리는 수식어는 '횡설수설' '장광설' '요령부득' '애매모호' '그로테스크' 등과 같은 비교적 부정적인 어휘들이다. 이들은 '일반 독자'를 원치 않는다. 그런 시를 쓰는 시인들끼리 품앗이하듯 서로의 독자가 돼준다. 생산자(시인)가 곧 소비자(시인)인 폐쇄적 구조이다.
- 평론집 『깊고 푸른 고백』 「채송화는 전압이 높다」에서/ (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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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호 평론집 『깊고 푸른 고백』에서/ 2022. 10. 15. <북인> 펴냄
* 김남호金南鎬/ 경남 하동 출생, 2002년 계간 『현대시문학』으로 평론 부문 & 2005년 계간 『시작』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링 위의 돼지』『고래의 편두통』『두근거리는 북쪽』, 디카시집『고단한 잠』, 평론집『불통으로 소통하기』. 형평지역문학상, 디카시작품상 수상. 현) 박경리문학관 & 이병주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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