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
박희선(1941-2021, 80세)
늙은 소나무에 세 들어 사는
할미한테서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왜 보름째나 밭에 올라오지 않느냐
몹시 궁금해서 전화를 했단다
아내가 몸이 안 좋다고 했더니
지난봄에 큰 수술한 곳이
지금도 많이 아프냐고 되물었다
감나무와 호두나무 대추나무들
고라니와 멧돼지,
곤줄박이와 콩새 산비둘기까지도
내가 보고 싶어 모두 안달이 났다고
하얀 거짓말까지 보탰다
우리 보리밭은 잘 있느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에 고라니 큰삼촌이 돌아가셔서
온 집안이 조용히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 장날부터 호두나무 옆에
도라지꽃들이 만발했는데
자기는 보랏빛 꽃보다
흰 꽃이 더 예쁘다면서 혼자 웃었다
-전문-
▣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이성교(1941-2021. 12. 12. 향년 80세) 시인
경북 상주 출생으로 영동에서 성장하였다. 1966년 『문학춘추』로 등단하였고, 시집으로는 『연옥의 바다』 『빈 마을에 뻐꾹새가 운다』 『백운리 종점』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 등이 있다. 농협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퇴직한 후 매곡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의 작품세계는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처럼 '자연 친화적이면서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편들에서 들꽃 향기가 피어난다. 달면서도 시원한 산바람 맛이 나는 근원적인 고향과 함께하고 있다'라고 평가받고 있다. (p. 시 290/ 론 289)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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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 2022-봄(173)호/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_ 박희선 시인 추모>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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